사이코의 횡설수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2009년 9월 4일 금요일
근본주의 이데올로기
2009년 9월 1일 화요일
재미있는(?) 진화심리학
과학자가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대단히(진심으로) 좋은 일이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사회에 대해서 발언하려면 최소한의 사회/인문학적 교양은 쌓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이 나같은 듣보잡이 아니라 대학의 '석좌교수'라면 말이다. 벌써 백년도 전에, 서양의 한 경제학자는 경제적인 우위, 또는 지배의 문제는 ‘생산’의 효율성 여부가 아니고, 누가 생산을 담당하는가의 문제도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의 문제라고 밝혔다. 아무리 그 경제학자가 이제는 유행이 지난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밝혀낸 많은 부분은 아직도 유효하며, 그는 이제 ‘역사’에 해당한다.
2009년 8월 8일 토요일
사랑법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강은교
찬찬이 읽으면 뭔가 울림이 있다. '우리가 물이 되어'도 쉽고 좋은 시지만, 사랑법은 뭔가 아련히 있다. 뭔지는 나도 모른다. 모르면 모르는 거지 뭘. 그냥 울림이 있다니까.

사냥개는 사납다?
약 3주전 개를 한마리 입양했다. 자기 개를 가져보는 것이 우리 아들의 오랜 소원이었지만 비좁은 아파트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이사하면서 공간이 좀 넓어졌길래 그 오랜 소원을 들어주게 되었다.
교외에 있는 동물 보호소에 가서 버려진 개들 중에 한마리를 골랐는데, 아들은 커다란 품종의 수컷을 원했지만 나는 마르티즈 정도의 크기가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버려지거나 집을 잃어 보호소에 있는 개들 중에 작은 개는 거의 없었고 중간 크기부터만 있었다. 아무래도 작은 개보다는 큰 개가 부담스러워 버려지는 것이겠지하고 생각했는데, 4개월짜리 까만 래브라도가 맘에 들었었지만 너무 크고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한살 짜리 브르타뉴 스패니얼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 브르타뉴 스패니얼은 명색이 '사냥개'다. 사냥개라 하면 무슨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나는 '이빨이 날카롭고 마구 짖어대는 사나운 개'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이 아가씨(암컷이다)는 너무너무 온순한 거다. 전 주인에게 학대를 받은 경험도 있는지라 겁도 많고...
이제 개를 기르게 되었으니 개에 대해서 알고 싶어진 것이 더욱 많아진 아들과 함께 서점에서 책도 하나 사고 도서관에서도 몇 권 빌려서 공부를 시작했다.
바로 이 아가씨다. 이름은 스폰지. 원래 이름은 미라벨(자두 품종이다)이라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사냥개는 많은 수가 온순하고 영리하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골든 리트리버, 이런 저런 스패니얼들... 그것도 그럴 것이 사냥이라는 게 개들이 직접 사냥감과 싸우는 게 아니고 냄새를 맡아 추적하고 새들을 날게 하거나(스패니얼 종류 등), (물이나 땅에) 떨어진 오리등 새들 회수해 오거나(리트리버 계통), 굴 속에 숨은 여우나 토끼 등을 추격하는 용도(테리어 계통) 이었으니...
아무튼, 고정관념은 틀린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새삼 배운다.
2009년 7월 17일 금요일
정신분석, 종교, 그리고 과학
원래의 포스팅은 아래 링크, 트랙백은 걸지 않음(사실 트랙백을 걸 줄도 모르는 컴맹ㅠㅠ)
http://wallflower.egloos.com/1575038
Commented by 사이코 at 2009/07/13 22:10 [삭제] [답글]
" 조승희 사건은 이런 '심리치료'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조승희에게 필요했던 건 정신의학이나 심리치료가 아니라, 정신분석이었다. 그가 정신분석을 받았다면, 그의 공격성은 창조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과학'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라캉의 지적처럼, 지식은 오직 상상적 관계에서만 만들어진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인식이 아니라 바로 그 인식을 깨고 나오는 진리다."
좀 바꿔보았습니다. ^^;
조승희 사건은 이런 '심리치료'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조승희에게 필요했던 건 정신의학이나 심리치료가 아니라, 신실한 믿음이었다. 그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였다면, 그의 공격성은 창조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과학'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성경말씀처럼, 지식은 모두 헛되고 헜되며,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만 진리의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랬더니 곧바로 나의 무지를 나무라며 정신분석은 '치료'는 하지 않고 '진단'만 한단다.
Commented by 이택광 at 2009/07/13 22:30
정신분석학은 종교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진리라는 것도 종교적인 진리를 뜻하지 않아요. 이 블로그를 잘 뒤져보시면 정신분석학적 진리의 의미를 설명해놓은 포스팅이 있을 겁니다. 자신의 무지를 이렇게 솔직하게 드러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인터넷의 장점이죠^^ 그리고 정신분석학은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정신분석학은 심리의 구조를 판독하는 역할만을 할 수 있을 뿐이랍니다.
그럼 진단만 하면 치료는? 혹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승화 또는 '창조적인 발전'은? 저절로 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개인에게 맡기는 것인가? 게다가, 나는 정신분석학이 '종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어떤 한 분야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과학적 태도가 아닌 '이데올로기'이며 이데올로기의 완전체라고도 볼 수 있을 종교적 태도를 빌어 정신분석학에 대한 그의 태도를 비틀어 본 것일 뿐이었다. 아마 내가 오해받게 글을 쓴 것이리라. 그래서...
Commented by 사이코 at 2009/07/14 05:50 [삭제] [답글]
예, 제가 무식한 것은 잘 압니다.^^
종교도 '치료'가 목적은 아닙니다만 '공격성을 창조적으로 발전, 승화시켜주는' 역할을 충분히 하거든요.
또한 정신분석학의 진리가 어떤 건지 모르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만, 말씀하시는 걸 보아서는 '과학적 진리'와는 구분짓고 싶어 하시는 것 같군요.
근데 '종교적 진리'를 어떻게 정의하시는지요?
종교적 진리의 정의를 물었는데, 답은 이랬다.
Commented by 이택광 at 2009/07/14 08:43 [삭제]
종교는 치료를 목적으로 하죠. 완전한 인격체에 대한 열망이 종교를 밀고 가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진리는 그냥 판타지일 뿐이죠. 정신분석학에서 진리라고 부르는 건 무의식의 구조가 드러나는 순간을 말합니다. 형이상학적이거나 종교적 진리와 전혀 반대의 진리이고, 오히려 이를 무너뜨리는 것이죠. 공격성이 창조적으로 발전했다는 말의 뜻은 공격성을 없앨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아닙니다. 일찍 정신분석학을 통해 조승희의 심리구조를 파악했다면 저런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 판단한다면, 조승희는 정신병적 구조였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죠. 그리고 정신분석학이 추구하는 건 엄연히 '과학'입니다. 주체의 과학. 심리치료나 임상과 다소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대단하지 아니한가? 종교를 새로이 정의하는 이 대담함!!! 과학을 새롭게 해석하며 더 나아가 새로운 과학을 창조하는 이 대담함!!! 나는 할 말을 잃었다.
Commented by 사이코
종교가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구요? 완전한 인격체에 대한 열망이 종교를 밀고 간다구요? 종교적 진리는 그냥 판타지일 뿐이라구요?
ㅎㅎㅎ 종교에 대한 대단히 새롭고 독창적인 이해이긴 합니다만 전혀 동의할 수 없군요. ^^
교 과서적으로 말한다면 종교는 '구원'을 목적으로 하고(불교에서는 해탈이던가요?), 기독교에서 '완전한 인격체'라는 개념은 '둥근 사각형'만큼이나 모순된 개념이며 종교적 진리는 환상적이긴 하지만 단순한 '환상'에 그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근데, 종교가 도대체 무엇을 '치료'하나요? '치료'라는 것은 '병'을 전제하는 것일진대, 그럼, 인간은 모두(비종교인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요) '환자/병자'라는 의미이신가요?
또, 정신분석학이 ‘과학’을 추구하고 있고 그 과학은 보통 과학이 아닌 ‘주체의 과학’이라고 하시는 데, 기독교도 ‘창조 과학’을 만들어냈답니다.^^
아직 답글이 달리지 않았다. 아마 날짜가 좀 된 포스트이고 나같은 듣보잡하고 노닥거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겠지. 흐흐흐...
2009년 7월 14일 화요일
"KBS 스페셜 - 주방의 철학자, 한식을 논하다"를 보고.
왜 굳이 한식을 세계화시켜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한식의 세계화가 무슨 ‘국책사업’ 비슷한 걸로 가능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걸 왜 방송국에서 ‘스페셜’까지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눌님이 흥미있어하는 주제인지라 봤다.
근데 알맹이가 없다.
두 외국인은 그냥 뻔한 소리, 공자님 말씀만 되풀이할 뿐이고, 번역은 엉성하고(화면과 음성의 싱크가 안맞을 수도 있다. 강냉이를 소개하다가 쌀 튀밥 맛에 대한 코멘트를 자막으로 보내주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기획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하다 못해 디씨식으로 세줄요약이라도 해주던가.
프로그램을 보면서 은연중에 ‘일본이 일식의 세계화에 성공했다. 우리의 자랑스런 한식도 일식에 뒤질 것이 없다. 따라서 우리도 일본처럼 계획을 잘 세워 밀고 나가면 한식의 세계화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해놓고도 스스로 한심한 생각이 든다. 아니, 각국의 음식문화에 우열이 있어 순위를 가릴 수 있는 것이던가? 게다가 음식문화가 발달한 나라는 인도, 중국 등 한국 말고도 쌓였다. 하물며 유럽의 여러나라들도 각각 특색있는 자국만의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입장을 바꿔보자. 우리는 어느 나라의 음식을 알고 있나? 그리고 그나라의 음식들이 의도적인 세계화의 결과로 알려진 음식들일까? 인도의 카레, 독일의 소시지, 미국의 햄버거, 베트남의 쌀국수 이런 것들이 의도적으로 ‘세계화’된 음식들인가? 터키의 ‘케밥’은? 사람이 퍼져나가고 그 사람들과 함께 음식도 퍼져나가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한국음식의 세계화를 원한다면 교민들이 외국에서도 우리의 음식문화를 제대로 펼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맞을 것이다. 해외의 한식당들에 특혜를 주라는 것이 아니다. 그거야 개인사업들이까. 다만, 한국의 식재료들이 세계 곳곳의 동포들에게 신선하고 값싸게 공급될 수 있는 방도를 연구해 본다던가 아니면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대체재를 연구한다던가 하는 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일은 농축산물 수출에도 아주 적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두번째는 한식 조리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덧 1. 들깨, 프랑스에서 잘 자란다. 우리 마눌님께서 몇 년전 길러봐서 안다. 다만, 깻잎 향이 강해서, 그걸 프랑스 사람들이 (최소한 생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http://fr.wikipedia.org/wiki/Boudin_noir
